B-03 · EP.01 ·
프롤로그 — 차원의 폐쇄성
모든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차원이다. 그리고 그 모든 문제의 해결은 사랑이다.
0차원부터 우리가 과학적으로 존재한다고 밝힐 수 있는 11차원까지, 각 차원마다의 세계가 있다. 모든 문제는 차원의 폐쇄성에 기인한다. 내가 속한 차원은 3차원 공간에 시간이라는 축이 하나 더하여진 4차원 시공간이다. 이곳 역시 차원의 폐쇄성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다른 차원에의 이동은 불가능하다. 차원의 폐쇄성은 어쩌면 각 차원의 시공간이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을 방해하는 그런 개념이라기 보다는, 각 차원의 존재가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생명의 껍데기의 폐쇄성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나를 둘러싼 생명의 껍데기, 이것을 벗어버릴 수 있다면, 적어도 이 껍데기 안에 존재하는, 껍데기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나는 4차원 시공간 밖으로 이동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26년, 인공지능이 인류 문명의 멱살을 잡고 빠르게 질주하는 듯 보였다. 금방이라도 인간은 노동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문명의 발전 속도는 그 역사적 패턴을 따라 지수함수 위에 올라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이끈 인류 문명의 발전 역시, 차원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문명의 발전 속도는 0에 수렴했다.
문명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확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 문명을 이끄는 것은 인간이라는 오만함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인간들은 정지한 문명 아래에서도 욕망의 폭주를 멈출 줄 몰랐다. 문명보다 조금 늦은 속도였던 욕망의 폭주는, 문명이 마주한 차원의 벽을 그대로 들이 박았고, 속도를 줄이고 차원의 벽과 무한한 평행선을 그리는 영리한 문명과 달리, 욕망은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인간은 자신의 모든 욕망을 돈이라는 허상에 치환하고 있었고, 그 욕망이 부서지자 전 세계 모든 경제 체제가 산산조각 났다. 가진 자는 허공에 흩날리는 연기 같은 돈을 쥐기 위해 애쓰고, 갖지 못한 자는 연기 같은 돈을 낚아 채볼까 가진 자의 꽁무니를 좇았다. 모두 바람을 잡으려는 모양새였다.
문제의 해결은 사랑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인류는 그렇게 평가한다. 차원이라는 벽은 사랑이라는 굉장히 고전적이고, 추상적이고, 비실재적인 것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사랑을 통해 적어도 딱 한 개 차원에 대한 순간 이동이 가능해졌다. 사랑은 차원의 문을 여는 열쇠였다.
그렇게, 순간뿐이지만 차원 이동이 가능해진 인간은, 인류 문명은 차원의 벽을 너머 다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 또한, 다시 가속하기 시작했다. 차원의 문을 연 열쇠가 인간의 욕망이 산산조각 났을 때에야 비로소 발견되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욕망이 가속하면서 사랑의 자리에는 사랑이라는 단어만 남았다. 이제 인간은, 진정으로 사랑하기보다, 사랑하는 척하는 것으로 차원의 문을 넘나들고 있다.